* 4주과정의 공중보건의사/전문연구요원에 해당하는 육군훈련소 일기임을 밝힙니다.


입대 준비물에 관한 포스팅은 아래를 클릭.

2017/06/22 - [공중보건의사] - #4. 논산 훈련소 입대 - 입대 준비물



2017년 3월 9일 목요일

오늘은 훈련소 입대.

입영통지서에 적힌 날짜와 시간이 더 서럽게 느껴진다.




필자가 병원을 나와 지내고 있었던 부산에서 논산육군훈련소까지의 거리는 264km

자동차로 약 3시간 거리이다.



출발당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서 마련해준 버스가 부산역 앞에서 출발한다.

서울지역은 사당역에서 출발하고 대전/대구/광주의 광역시에도 각각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니

비슷한 시기의 대전협 공지사항을 잘 확인하도록 하자.

(http://youngmd.org)


하루전날,

목욕탕에 가서 목욕재계 하고. 목욕탕 이발소 아저씨에게 머리도 빡빡 깎이고.

교정시력 1.0을 정확히 맞춘 안경쓴 군인이 누구나 쓰는 값싼 검은 뿔테안경도 새로 준비했다.


구입하였던 짐을 미리 챙기면서 혹여나 훈련소에서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모자라지 않게 넉넉하게 짐을 꾸역꾸역 챙겨 넣는데,

입영 통지서가 나오고 지금까지 꽤 의미있게 놀려고 했었지만

역시 무엇을 하였건 더 시원하게 놀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침에 일어나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해주신 집밥을 챙겨먹고

허름한 츄리닝 한벌과 점퍼를 챙겨입고

짧은 머리를 가리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만삭의 아내와 어머니를 뒤로 한채,

아버지와 함께 스포츠백 하나 어깨에 둘러매고 집을 나선다.

3월이지만 아직 바람이 차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논산까지 직접 데려다 주기로 하였기 때문에

논산까지 가는 3시간은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가는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스낵코너에 있는 핫도그, 감자, 닭강정 등이 눈에 들어오자

한달은 저걸 먹을 수 없겠지라는 생각에 와구와구 살까 잠시 고민을 하였지만

그다지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괜히 먹었다가 더 생각 날 것 같았다.


논산까지 가는 3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전라남도를 지나면서 장수-익산 고속도로 구간에서 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우뚝 솟은 마이산을 볼 수 있다. 



마이산에 가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는데

입영 전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같았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자연이 주는 메세지 같은?

운전중이셨던 아버지는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시며 사진 좀 찍어보라고 하셨고

그런 모습을 잊을새라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입영심사대는 달리는 국도변에 덩그러니 있는데

내비게이션에서 도착이 임박했다는 메사지가 나와도

주변은 뭔가 그냥 달리는 국도에 뭐가 나올것 같지 않은데 갑자기 왼쪽 길건너에 큰 대문이 하나 있고

주변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머리 깎은 의사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다.

다들 순박하고 공부 할것 같은 얼굴인데

머리를 깎여 놓은이 뭔가 험한(?) 스멜도 풍겨온다.


* 네이버 거리뷰는 군사시설에 닷지를 해놓았네요.


입영전 마지막 식사를 아버지와 함께 하기로 하고

입영심사대 앞에 있는 ㅈㅈ회관에서 밥을 먹는다.

한 차례 입영장병들이 식당을 휩쓸고 간 뒤라 그런지 식당 여기저기가 어수선하다.

7천원짜리 갈비탕 한 그릇 먹으려고 했더니

메뉴가 다 떨어졌다며 불낙새(불고기/낙지/새우 전골)를 먹으라고 한다.

35000원 짜리 낙곱새를 그것도 공기밥은 별도인 메뉴를

아버지와 함께 먹고선 식당의 믹스커피를 홀짝거린다.

달고 맛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믹스커피도 아마 훈련소에서라면 그리울 것이다.


식당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 

부모님과 함께 온 이들.

같은 지역 친구들끼리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이들.

연인 혹은 와이프와 함께 온 이들.

각양 각색의 훈련소 입소전 마지막 모습들이 보인다.


그 사이 이 곳에서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짧은 머리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이제 곧 훈련병이 될 의사(?)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씁쓸하다는 것과

그를 따라 이곳까지 배웅을 나온 연인 혹은 와이프의 옷차림은 화려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얘기지만 서울 사당역까지 배웅나갔던 아내의 친구가 말하길

그 곳까지 배웅 나왔던 연인들의 옷차림도 하나같이 화려했다고 한다.


11시가 다가오자 아버지와 함께 입영심사대 입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입영심사대로 들어간다.

입영심사대 내에서도 여기저기 포토 포인트가 있는데

멋있게 세워져 있는 탱크 등 조형물들이 있었던것 같다.


입영일시로 예정되어 있던 오후 2시가 다가오고

가족들은 모두 스탠드에 남고 입영자들은 모두 운동장에 집합한다.

한번의 예행연습과 함께 입소식이 끝나고

줄줄이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난 다음에 강당으로 이동한다. 

아버지는 스탠드에서 내 모습을 보시다가 내가 강당앞으로 가는 길 가까이까지 오셔서

내 이름을 부르고는 마지막으로 손을 한 번 흔들어 주셨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얘기지만

훈련소에 나를 보내고 오신 아버지께서 말씀 하시기를,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내 아들은 어딨는지 보이더라고 하셨다고 한다.


강당으로 이동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지역별로 흩어져 모인다.

이때 지역별이라 함은 입영통지서를 받은 관할 병무청을 말한다.

나는 부산지방병무청에서 입영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에 부산지역으로 모이게 되었다.


나중에 알기 된 얘기지만

일반의 공보의(의대 졸업후 바로 온 사람들)들은 신검받은 병무청 

혹은 현재 거주중인 지역의 병무청이 관할지역이었고

인턴 혹은 레지던트를 마친 공보의들은 수련병원이 있는 지역의 병무청이 관할지역이 되는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우르르 모여 앉아 출석을 부르고

(출석은 생년월일으로 불렀다..)

먼저 불린 사람들 순으로 차곡차곡 연대/중대/소대/분대가 편성되었다.

(우리는 키 순으로 모여서 편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편성이 되고나면 부사관 한분이 오셔서

"여러분들 O연대, O중대, O소대, O분대이며 여기서부터 몇번~몇번 훈련병 입니다.

분대 3~4개가 모여 1개 소대를 이루고 

소대 3~4개가 모여 1개 중대를 이루며 

중대 3~4개가 모여 1개 연대를 이루기 때문에

연대-중대-소대-분대 순은 같다.


숫자를 잘 기억해뒀다가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를 얼른 바꿔두면

지인들이 인터넷 편지를 보낼 수 있다.

군편지 특성상 손편지는 평일기준 약 3~5일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차가 제법 생기고

인터넷 편지는 게시판에 당일 적어준 편지를 행정반에서 직접 출력해서 전달해준다.

"XX연대 YY중대 Z중대 A소대 OOO번 훈련병"

이렇게 자신의 소속을 알고 나면 줄줄이 걸어서 진짜 육군훈련소까지 이동한다.


무거운 짐을 매고 가면서.

긴 줄은 어느 길목에서 반쯤 사라지고

(다른 연대로 가는 다른 지역 사람들)

남은 반은 또 다른 생활관 앞에서 사라진다.

(다른 중대로 가는 인근지역 혹은 같은지역 사람들)


내가 생활할 생활관 앞에 집합을 하는데

소대장 한 분의 지시하에 소지품 검사를 시작한다.

자진해서 물품을 내라고 하더니

인터넷 글들 보면 짐 안뒤지니깐 그냥 숨겨두라고 했었는데.

아무도 소지품을 낼 생각을 하지 않자

가방 다 열라고 하면서 분대장들이 돌아다니며 가방을 다 뒤진다.

원칙적으로는 위험한 물건(칼, 면도기 등)을 포함한 군대에서 불필요한 물건은 모두 다 내놓으라고 하였고

그제서야 포카피 분말, 커피믹스 등등을 가방에서 꺼내놓는 훈련병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재빠른 이들은 가져온 이러한 물건들을 가방 깊숙히 숨기는 순발력을 발휘하는데 나중에 이들은 압수당하지 않았다.

사실 분대장들도 다 알기 때문에 대충 깊숙히 숨겨놓은 짐들은 적발하지 않은것 같다.

대신 생활관 내에서 쓰다가 걸리면 박살난다...(고 하고.. 흠 그냥 그렇다고 한다.)


훈련병 한 명이 그냥 무대뽀로 깊숙히 숨기지도 않고 버젓히 보이는곳에 놓고 있다가

짐을 뒤지던 분대장도 어이가 없어 바로 적발을 하였는데

그 훈련병은 많은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였다. 

("지금 뭐하는겁니까!! 여기는 군대입니다! 이럴꺼면 훈련소 올 필요 없습니다. 집에 가십쇼". 등등)


소지품 검사가 끝나고

또 줄줄이 이어 생활관으로 들어가면 이제 내가 지낼 생활관이 있다.


* 무한도전 진짜사나이편 캡쳐

(실제 논산육군훈련소 촬영분은 아니지만 침상, 관물대 등 구조가 비슷함)


나중에 중대장님께서 말씀해주신거지만 내가 속해있던 생활관이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가장 오래된 생활관이라고 했다.

본인의 번호자리에 배치를 받아 보지만

앞소대 앞번호 부터 꼬인 번호가 뒷소대 뒷번호까지 꼬여서

나중에 자리를 한 번 더 옮기기도 했다.

(훈련소 기간 중에도 이런 일은 허다하게 반복됐다.)


입소하면 휴대폰과 현금을 포함한 각종 소지품을 제출하고

(휴대폰은 이때 제출하니 "XX연대 YY중대 Z중대 A소대 OOO번 훈련병"을 

제출하기전에 메신저 상태메세지로 얼른 변경하자.)

설문지 한 두개. 그리고 각종 조사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리고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사회에서 입고 온 옷을 군대 활동복으로 갈아입었고

배급받을 군복과 신발, 베레모 사이즈 적어내고 예방접종자 신청하고 종교 활동 조사하고.. 등등..

입소 준비만 하였을 뿐인데

벌써 저녁

집생각은 아직 별로 안난다.


저녁식사를 하고 난 뒤엔

관물대(사물함)정리법, 간단한 제식등을 배우고

관물대에 미리 배치되어 있던 전투복과 활동복 사이즈를 

자신의 것으로 맞추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사이즈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옆사람과 바꾸고 다른 분대와 바꾸고 해도 맞는거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며칠 걸렸다.



취침은 22:00

불침번과 경계근무(나중에 설명하겠다.)는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다같이 수면.

나는 코골이가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간 귀마개 3개를 꺼내어

양옆 동기들에게 건넸다. 하나는 내가 하고.

두 분 다 본인의 귀마개를 갖고 오셔서 고사하셨는데 이해해준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폭풍 수면.


별로 한 것도 없이 첫날이 다 갔다.



# 재야의 고수를 꿈꾸다.

cochlear84.

2017.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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